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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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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157회 작성일 20-06-22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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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상도에 사는 아버지들은 하루에 단 세 마디를 하고 산다고 합니다. “밥 묵자!” “아들은?” “불 끄라. 자자.” 갈수록 집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한국의 아버지들을 희화화 시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오늘 날 우리는 ‘아버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간다고들 합니다. 과거와 같은 가부장 사회의 권위를 아버지가 지니고 있지 못하고, 또 일상의 분주함 가운데 대부분의 육아를 어머니가 전담하고 있기에, 아버지는 가정에서 별로 재주가 없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적으니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대화하는 능력을 점점 상실해 갑니다. 갈수록 경쟁이 심각해지는 사회에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도 가중되는데, 그렇다고 집에 간다고 마음이 편하거나 쉴 자리처럼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점점 외로워져 갑니다. 말 수가 줄어듭니다. 이렇게 아버지가 살기 힘들어지는 시기에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아버지’란 글이 인터넷에 등장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뭐든지 다 아셔.(4살) 우리 아버지는 꽤 많이 알고 계셔.(7살) 우리 아버지는 아는 게 그렇게 많지 않으신 것 같아.(9살) 우리 아버지는 아는 게 별로 없어.(12살) 우리 아버지요, 그분은 지나칠 정도로 구식이라고요.(17살) 아, 그 양반 말씀이군요. 한 1세기쯤 뒤떨어지신 분이랄까...(21살) 우리 아버지는 많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신 것 같아요.(30살) 아버지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아 봐야 하겠습니다.(40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아버님과 의논하고 싶습니다. 그 분이 만일 내 입장이셨다면...(50살) 우리 아버진 정말로 모르는 게 하나도 없으시군요.(60살) 아! 우리 아버지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65살)


제가 어려서 경찰 공무원으로 무시무시한 ‘정보과 형사’이셨던 저희 아버지가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항상 과묵하시고, 지적을 많이 하시고... 그런 무서운 아버지가 처음으로 안쓰럽게 느껴졌던 때는 전두환 대통령의 5공화국 때였습니다. 시국의 영향으로 거의 한 달간 집에 들어오지 못하시고, 중간에 옷가지를 가질러 몇 번씩 들어오시는 것이 전부이신 아버지가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의견이 사사건건 부딪히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가 뉴스와 선배들과의 대화, 그리고 사회과학서적을 읽어가며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아버지는 대학 선배들과 동아리 활동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고, 또 사상검증처럼 제가 읽고 있는 책을 주목하시기 시작하시면서 아버지와의 의견에 차이를 경험하게 되었죠. 결정적인 것은 제가 대학교 3학년 신학과 학생회장을 하며 학내사태의 주역으로 활동하며 ‘고소’와 ‘고발’을 각각 당하며 서대문 경찰서를 들락날락 하면서부터입니다. 그 때 아버지는 수시로 서대문서의 후배 형사들로부터 연락을 받으셨고, 심지어 아들뻘의 제 담당 검사로부터 2번이나 불려가 수모를 당하고 돌아오시기도 했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던가요? 당시 목숨을 내걸고 정의를 위해 살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품은 아들의 뜻을 아버지는 꺽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곤 수많은 논쟁 가운데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을 전하셧습니다. “준협아, 너를 믿는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두려운 순간에도, 아버지의 당부가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며 “부모를 이기는 자식도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우리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을 “아버지”라 부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에 대한 표현인 ‘엘로힘’ ‘야웨’는 쳐다보기만 해도 인간이 죽는 신성을 지니시고, 우레와 번개가 빽빽한 구름가운데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 심판과 분노의 하나님을 예수님께선 ‘탕자의 비유’(눅 15장)를 통해 방탕한 아들을 먼발치에서 보고는 달려 나가 그를 부둥켜안는 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 분은 곳곳에 금지 팻말을 붙이시고 우리를 제한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때로는 울타리 밖에 나가 있는 자식이라도 기다리시는 분, 언제나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는 인자한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분은 기도로 우리와 대화하시길 원하십니다.


이제는 두 딸의 아버지가 된 저는, 아버지로서의 제 부족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위로가 되는 것은, 저도 하늘에 계신 분을 ‘아버지’ 삼아 나의 부족함을 채워가는 인생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날이 갈수록 아이들은 아버지의 부족하고 못난 부분에 눈을 더 뜨겠지만, 아이들이 언젠가는 제 나약한 어깨로 가정을 꾸려가려 노력했던 날들을 이해해 줄 날이 다가오리라 믿습니다. 아버지 날(Father’s Day)이 되니 한국에 계신 늙은 우리 아버지가 더욱 뵙고 싶은 날입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그 분이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되심이 무엇보다 위로가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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