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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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1,058회 작성일 21-04-17 23:46본문
저는 2014년 5월에 미국에 왔습니다. 직전인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전국이 떠들썩한 상황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사건이 일어난 원인과 이 사건에 대한 해결방식이었습니다. 갖가지 의문을 품고 미국으로 온 지 7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은 여전합니다.
교회 안에 희생자 가족이 있었던 안산 화정감리교회의 담임 박인환 목사님은 이 일을 사회에 알리고 해결하고자 노력을 기울이신 분입니다. 박 목사님의 페이스북을 보다가 얼마 전 올라온 짧은 글에 가슴이 아렸습니다.
“7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 1. 인천항의 모든 여객선 출항 금지했는데 왜 세월호만 출항 허가를 했지? 2. 구조할 수 있었는데 왜 구조하지 않았지? 3. 왜 청와대는 대통령의 7시간을 감췄지? 4. 왜 새누리당은 유족들을 폄훼하고 괴롭혔지?” 목사님은 답답한 마음에 “알고 계신 분은 좀 댓글로 달아달라”는 하소연도 하셨습니다.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이 쌓여만 갑니다. 심지어 해군참모총장이 구조선 작업을 직접 지시했는데도 지켜지지 않았고, 나중에 세월호 선박 운영에 국정원이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진전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해가 되지 않는 사실은 세월호로 인해 촉발된 촛불시위로 당선된 한국의 촛불 정부가 아직도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통령이나 한 나라의 정부가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장애가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요? 세월호 참사는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게 될까요? 수십 년이 지나 정보공개가 되어서야 이유를 알게 될까요? 그러면 꽃다운 나이에 희생된 아이들과 유가족의 아픔은 누가 치유할 수 있을까요?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를 향해 수학여행 가다가 희생된 단원고 학생이 250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 중 제가 아는 안산의 감리교회를 다니던 학생도 17명이나 되었습니다. 다 우리교회 유스 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자란 하나님을 믿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저는 2년 전 목회수상을 쓰면서 “고통 앞에서는 중립이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여전히 어떤 의식의 양보도 없고 타협할 생각도 없습니다. 교회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논리이기 전에 신앙의 문제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애틀랜타 총기사건 이후 이를 위한 외부 집회를 섬긴 이유도 같았습니다. 공공의 영역이 무너질 때, 교회는 신앙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성경이 전한 진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이 땅에 이뤄질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예언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세월호 사건이 주는 충격은 공공의 영역이 국민을 전혀 보호할 의지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해경이 구조하러 왔다가 눈앞에서 아이들과 시민이 수장되는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해군이 구조하기 위해 출동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것을 막았습니다. 가슴이 시커멓게 타올라 아프다고 유가족들이 울며 소리치는데 정치인들이 그들을 욕되게 했습니다. 그러면 약자들을 보호할 이들은 누구입니까? 아시안이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되는 상황이 된다면 당연히 우리는 사회 안에서 공공의 영역이 관여하길 요청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공공성은 여기에 반응합니다. 하지만 우리 고국의 공공성은 아직도 침묵 중입니다.
미국의 유대인 랍비이자 예언서 전문가인 아브라함 헤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의와 자비의 하나님께서 악의 존속을 허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가 넓게 펼쳐질 수 있게 하려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도와야 하는가?'라는 문제와 결부된다."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냐고 하나님께 묻기 전에,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고 계시는 그 소명에 눈을 뜨라는 뜻입니다. 고통에 반응하는 것은 정치의 문제이기 전에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고 그 아픔에 응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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