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도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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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1,153회 작성일 21-05-30 09:07본문
저는 목사지만 기도가 제일 어렵고 힘듭니다. 그래서 부족한 목사입니다. 20대 후반 강원도 양양의 시골교회로 목회를 나갔습니다. 아름다운 시골의 언덕 위에 교회는 새벽기도 시간이 1년 12달 4시30분이었습니다. 한 분 계신 장로님은 언제나 새벽 3시40분 정도에 교회 오셔서 기도를 시작하셨죠. 사택이 옆에 있기에 여름에 창문을 열어놓고 자면, 항상 새벽마다 “죽여~ 죽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장로님이 오셔서 “주여~” 소리치시며 통성기도를 시작하시면, 그 시간까지 자고 있던 저에게 “죽여~” 하는 소리로 들렸던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 깨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씻고 양복을 입은 후 새벽기도에 나가곤 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담임 목사니 장로님보다 먼저 나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언제부터인가 3시20분에 장로님보다 먼저 나가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힘들어 나중에 포기했습니다. 20세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해 당시 나이 70에 가까운 장로님은 50년 세월 동안 몸에 익은 시간이셨지만, 한참 수면 호르몬이 풍성하게 배출되던 젊은 나이의 저에겐 새벽기도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목회하면서 기도가 고민이 되어 기도를 배우고 싶어 먼저 그 길을 걸었던 선배들을 찾았습니다. 저에게 그 문을 열어 주신 분은 부산 괴정교회를 담임하시던 고 박효섭 목사님이십니다. 동방교부들을 연구하시며 정교회의 스케테 양식의 수도원 운동을 한국에 소개해 주셨던 분입니다. 박 목사님께 동방교회의 영성과 기도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감리교 입석 수련원을 찾아 저와 같이 기도가 고픈 목회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곤 했지요.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하라,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걱정하게 하라!” 기도하면 자신의 근심이 곧 하나님의 근심으로 바뀐다는 아주 대담한 표현입니다. 기도하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내 고민이 하나님의 고민이 되고, 세상을 품은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또 존 번연은 기도에 대해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당신이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기도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도, 사귐도 없기 때문에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에 가까울 뿐이라는 것이죠. 또 C.S 루이스는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귀가 쓰는 첫 번째 전략은 성도들 마음속에 기도하는 마음이 생겨지지 않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자녀 된 특권을 사용치 못하게 하며 내 사건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변화시킬 위대한 권리를 포기하게끔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이란 것이죠.
신앙의 선배들이나 영성가들이 이렇게 기도를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과 교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목적은 기도응답이기 보다 하나님을 만나고 사귀며 그 분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 바로 그 자체에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측근이 되는 겁니다. 측근이 무슨 뜻입니까? 제가 ‘측근’이란 단어로 기사검색을 해 보니까 이런 기사제목이 검색됐습니다. 〈“영국 존슨 총리, 코로나보다 약혼녀에 신경” 옛 측근이 직격〉, 〈최연소 아나운서’ 김수민, 사표 제출…측근 “학업 이유”〉, 〈윤석열 당분간 '독자행보'?…측근들 "등판과 동시에 입당은 좀"〉 한국 뉴스를 보면 측근이란 단어가 좀 부정적 뉘앙스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하지만 ‘측근’이란 단언의 사전적 의미는 “곁에 가까이,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의중을 가장 잘 알고, 그 사람이 믿고 일을 시키는 사람. 이런 사람을 측근이라고 하는데, 이런 측근이 되려면 ‘독대’를 자주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자주 독대하는 사람이 대통령 측근이고, 하나님과 자주 독대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측근인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측근이 되는 방법이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지난 팬데믹 기간 저의 영성을 돌아볼 때 가장 부족하고 결핍된 부분이 기도였습니다. 새벽기도도 온라인으로 진행하다보니 온라인 화면을 틀어놓는 시간만큼만 기도하게 되더군요. 6월이 시작되면서 우리교회는 다시 새벽기도와 수요예배를 정상화 합니다. 그리고 수요예배를 ‘수요기도회’로 타이틀을 바꿨습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선교하는 교회”가 지난해에 이어 금년 우리교회의 표어였는데, 이제는 모여 기도하며 기도의 열매를 얻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호흡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단순한 표어가 아니라 생존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전 살기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풍요로운 기도의 시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기도하던 모세의 손을 붙잡아 주었던 아론과 훌처럼 부족한 종과 함께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기도로 세워갈 동역자가 저에겐 절실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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