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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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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1,118회 작성일 21-08-08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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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진행되는 2020 제32회 국제 하계 올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33개 종목에 339개의 금메달을 놓고 205개국에서 참여한 수많은 철인들이 참여하며 경쟁하고 있습니다. △ 팬데믹의 여파로 1년이 연기된 점, △ 후쿠시마의 농수산물로 인한 한국과 미국의 선수 도시락 활용 문제, △ 한국 선수촌의 현수막 논쟁 등으로 점화된 갈등으로 인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일본 부흥’이란 목표로 경기를 준비했던 일본 정부는 팬데믹으로 인한 무관중 경기와 관광 특수의 상실 등으로 인해 엄청난 적자를 앞두고 있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을 일찌감치 ‘한국 때리기’로 국민적 관심을 돌리며 행사를 강행했습니다. 올림픽이 취소될 경우 그 정치적 책임을 일본 정부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이슈를 지닌 이번 올림픽의 슬로건은 아이러니하게도 “감동으로 우리들은 하나가 된다(United by Emotion)”이었습니다.


올림픽 경기 등 국제 스포츠 경기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메달의 색깔에 따라 선수들의 만족도에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금(金) 은(銀) 동(銅) 순서에 따라 선수들의 만족도가 이어질 것이라 예상하는데,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선수들의 성취감은 금(金)→동(銅)→은(銀)의 순서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우승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동메달을 딴 선수는 대부분 의외의 결과로 메달 권에 진입한 경우였기에 3등의 순위에도 만족하였다고 하지요. 하지만 금메달을 놓고 경쟁에 패배해 은메달을 얻은 선수는 이에 대한 아쉬움과 분노가 더 컸다는 것이죠. 재미있는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한 종목당 참여한 선수가 어디 금은동 메달을 차지한 3명이나 3팀뿐이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4년마다 진행하는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땀 흘려 준비하고 노력할까요? 그런데 이놈의 경기는 1등만 기억하는 경기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이 더러운 세상!”이란 누구의 자조 섞인 표현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스포츠의 분야에서도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세상을 만들고 말았지요.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경쟁보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눈에 안 보이는 수단과 방법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을 지혜롭게 여기는 무한경쟁의 시스템을 우리는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이스라엘의 ‘베데스다 연못’이란 곳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매년 3-4 월의 부림절이나 유월절에 베데스다에 있는 연못에 천사가 내려올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의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어들 때, 38년 된 만성 병자는 힘이 없어 뛰어들지 못했죠. 이 연못의 근본적인 문제는 연못의 물이 소용돌이칠 때 가장 먼저 딱 한 사람만이 그 연못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승자독식의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이 베데스다의 법칙입니다. 가장 앞선 사람만이 기회를 누리는 세상의 가혹한 법칙입니다.


그 법칙에 걸려 헤어나지 못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신 것이죠. “정말 낫고 싶으냐? 그렇다면,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 그 한 마디로 그 병자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먼저 나서는 한 사람만이 선택될 수 있도록 만드는 세상의 시스템을, 세상의 무한경쟁의 그물망을 한순간에 해체해버리고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주위의 환경에 지배되지 않고 언제나 중요한 것은 당당한 믿음의 주체로 살아가는 용기와 의지라고 말씀합니다.


올림픽의 경쟁을 즐거움으로 관람하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은 그 경쟁에서 승자만이 살아남고 패자들은 잊혀지는 경쟁의 법칙, 즉 ‘베데스다의 법칙’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의 인습적 지혜를 전복시키는 혁명적인 능력을 갖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오늘 세상의 법칙에 압도돼, 나 하나 사는 것만으로도 벅차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네가 정말 낫고 싶으냐? 그렇다면 자리를 들고 일어나 담대히 걸어가라!” 그 자리는 승자독식의 경쟁이 아니라,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누구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상생의 길인 것입니다. 올림픽의 끝자락에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이는 경쟁’이 아니라, ‘믿음만 있다면 누구도 함께 갈 수 있는 공존의 즐거움’이 어려운 팬데믹의 지구촌을 채워가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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