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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Johnbur)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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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62회 작성일 22-06-12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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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연합감리교회 공보국의 온라인 자료를 열람하며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달러 가치와 교회 사역〉이란 자료를 읽게 되었습니다. 재미난 제목이지만 그만큼 어려운 시대의 현실을 반영한 자료이기도 했죠. 이제 교회도 사역을 진행하는데 ‘인플레이션’을 비중 있게 감안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요지였습니다.


자료를 보면, 가령 2012년에 50만 달러의 교회 예산을 집행한 교회는 10년 후인 올 해(2022년)의 경우에는 62만 달러 이상이 소요된다고 설명합니다. 5년 전 급여가 5만 달러였던 사람이 올 해 5만8천 달러를 받는다면, 수치 상 소득은 늘어났지만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경우 실질 소득이 감소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년 전에 교회 건물과 유지, 보수 작업을 위해 연간 15만 달러를 사용한 교회는 2022년에 동일한 수준의 유지 관리를 위해 필요한 예산이 약 27만 달러라고 소개합니다.


교회의 예산을 언급하면서 인플레이션 개념을 연합감리교회 공보국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장에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주머니는 얼마나 가벼워졌고 그 삶이 얼마나 팍팍해 졌을까?’ 실감이 됩니다. 물론 저희 가정도 팬데믹 이후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하는데도 어려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20세기 초 대공황의 시기를 살아갔던 미국의 선조들을 상상한다면 우리보다 더 어렵고 험한 시기를 살아갔을 것이라 생각이 되지만,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불편과 어려움이 1세기 전의 상황과 왠지 오버랩 되기만 합니다. 


모두가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는 때, 몇 년 전부터 “존버”란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 ‘존 버나드(John Barnard)’ 같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영어로 된 이름인가? 생각했는데 결론은 비속어였습니다. 그 뜻은 “×× 버티다”의 줄임말로서 “견디고 또 견딘다”는 뜻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암호화폐가 등장한 이후 투자자들 사이에서 근근이 사용되면서 일반화된 일종의 신조어가 된 용어라 합니다. “지금 주식이나 코인 가치가 덜어져도 계속 붙잡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살아날 수 있다”는 그들의 믿음(?)이 담긴 비속어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표준어처럼 쓰이고 있는 것이지요.


여담이지만 지난 봄 뉴욕에서 진행된 연합 집회에 참석했다가 30대, 40대, 50대, 60대 이상 목회자들이 세대별로 간담회를 진행하고 나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올 해 49살이 되는 제가 40대를 대표해 발표하며 “우리는 지금 ‘존버’하며 목회하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나이 드신 목사님들이 “그 뜻이 뭐냐?”고 물어보셔서 골때렸습니다. 세대 간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모습도 골때렸고, ‘존버’라는 용어를 나의 삶을 비유하는 단어로 굳이 사용하고 있는 제 실존적 고민도 골때리는 상황이었습니다.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민자’라는 척박한 계급에 놓은 우리 ‘미쿡인’들은 모두 이렇게 ‘존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히브리 성서 연구가이기도 한 유대인 랍비 조나선 색스(Jonathan Sacks)는 〈매주 오경읽기 영성강론〉 이란 책에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트라우마’가 될 만한 인생의 상처와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을 묵상하며 그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난 홀로코스트(대량 학살)의 생존자들에 대한 기록을 읽다가 그 답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을 연구한 사람들에 따르면 그들 대부분이 과거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사건 이후에 혼인하게 된 자신의 배우자들이나 자녀들에게도 말이죠. 그들은 새로운 땅에 찾아가 그곳의 언어와 관습을 새로 배우기 시작합니다. 직업을 찾고 경력을 쌓고 가정을 꾸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앞만 보고 살았지 과거에 잡혀있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40년이 지나고 50년이 지나고 나서야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그리고 세상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들을 생각하며 랍비 조너선 색스는 말합니다. “우리는 먼저 미래를 건설해야 한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과거를 슬퍼할 수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심각한 트라우마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났던 영적 거인들의 공통점도 같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심각한 상처에 메여있지 않고 “미래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여러분이, 그리고 우리가 ‘존버’하며 살아가는 이유도 마찬가지이겠지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는 종말론적-실존적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나라가 임할 것이란 믿음으로 ‘지금 여기’의 아픔을 이겨내기로 결심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는 모두 지금 함께 ‘존버 합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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