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독립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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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297회 작성일 22-09-02 19:53본문
지난 2020년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이 시작되며 미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풍속도가 있습니다. 핵가족 사회인 미국에서 젊은 층의 절반 이상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지요. 1960년대 미국 청년의 29%만이 부모와 같이 살고 있다고 대답하며, 장성한 자녀들이 독립하는 것이 미국 가정의 당연한 전형으로 이해되어 왔었습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미국 젊은 층의 52%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불황과 사회적 어려움으로 인해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더 안전하고 경제적이다”라는 생각을 젊은이들이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이지요.
반대로 저희 가정은 미국사회의 전형처럼 이제 아이들이 다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번 휴가를 통해 둘째 딸 지아의 입학을 위해 뉴욕 소재 미대의 기숙사에 보내고 왔습니다. 한국에서 아들을 군대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을 딸을 기숙사에 넣어주고 오는 길에 느끼게 되었네요. 팬데믹이 시작되며 1년가량 집 안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엄마 아빠랑 지지고 볶다가 보스턴의 대학으로 올라간 첫째를 보낼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첫째 녀석이 장녀라 더 책임감 있고 독립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에 비해 둘째는 좀 더 세심하고 부모를 의지하며 살아오던 타입이었거든요. 아마 막내라 더 그렇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집을 떠나야 하는 본인도, 또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학교생활엔 적응을 잘 할까?’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을까?’ ‘좋은 친구들을 잘 만나야 할 텐데…….’ ‘집을 떠나서 외롭지는 않을까?’ 생각과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또 누가 그러더군요. “아이고~ 아이들은 어련히 미국사회와 학교에 잘 적응하며 성장할거예요. 오히려 부모가 문제지요!” 그 이야기가 이해되면서도 가슴에서 자녀를 걱정하는 마음은 떠나질 안습니다. 아이를 보내고 돌아와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어도 괜히 둘째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미국에선 이렇게 세월이 흐른다는 것을 자녀를 떠나보내며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도 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태초에 신이 어머니를 만들고 자식을 낳게 했는데, 자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출산하는 족족 어머니가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번성하지 못하게 되자, 신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반으로 줄이니 그 때부터는 잡아먹지 않고 잘 키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화가 주는 교훈은 자녀를 동일시하는 부모의 심리가 어찌 보면 자녀의 불행을 키우는 원인이란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오랜 기간 청년목회를 하면서 남편과의 관계에서 불행을 느끼는 엄마들이 딸의 인생을 가로막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던 경험도 있습니다. 아마 자신이 느끼는 불행을 딸의 행복을 통한 대리만족을 느끼며 극복하기를 원했겠지만, 그것이 딸의 주체적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을 고집해서 생기는 문제가 불행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해 전공을 바꾸게는 것도 엄마가 예전에 공부하길 원했던 분야로 정하고, 딸이 남자 친구를 만나는 것도 아빠가 아닌 엄마가 컨트롤하고, 심지어 대학에 입학한 딸의 머리를 평소에 엄마가 감겨주기도 했습니다. 그 딸은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도 혼자 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엄마가 다 해 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다른 친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며 자신에 대해 주체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딸이 행복해 지는 길은 어머니로부터 분리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사랑은 떠나보낼 용기를 품고 있는 행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만나 더 건강한 둘로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요? 이번에 둘째를 보내고 와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홀로 살아가야 하는 두 딸들을 위해, 그리고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둘이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저희 부부를 위해서 말이지요. 아마 우리 성도들은 이미 경험했을 문제를 이제 그 나이가 된 제가 경험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아이들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부모가 이제는 아이들을 독립시키며, 우리도 인생의 후반부를 제대로 독립해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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