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물러나고 머무르며 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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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80회 작성일 23-01-29 01:08본문
신학교 다닐 때 오랜 전통의 ‘퇴수회’라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한자어로 “뒤로 물러나 수행하는 모임”이란 뜻이지요. 교수님들 때부터 있던 행사였다고 하니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오랜 전통이었겠지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좀 떨어진 곳으로 전교생이 교수님들과 떠나 저녁마다 석학들의 특강을 듣고 집회에 참여하며, 낮에는 선후배들이 조를 짜 교수님들과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교수님들과 친해지고, 선후배들과도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지요.
지난 한 주 자리에서 잠시 물러나 금식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해에도 ‘몸비우기 수련회’를 두레마을에서 진행하며 금식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두레마을의 조규백 목사님 부부와 셋이 함께 했습니다. 기도하고 산책하고 성경을 읽고 대화하며,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주제와 관련한 중요한 신학 서적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더 머물고 싶었지만 담임목사로서의 일이 또한 있기에 목요일부터는 교회로 출근했습니다. 물러남도 결국 다시 나아기기 위한 자리이니 그것 자체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난해처럼 금식하며 몸을 위해서 금식 이틀째인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3일간 관장을 했습니다. 빈속에 따뜻한 소금물을 많이 마시며 장을 자극하고 씻어 오래된 숙변을 내보내기 위해서였는데,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내 속이 얼마나 시커멓고 냄새 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먹지 않은 장에서도 이렇게 더럽고 냄새나는 새카만 똥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내 몸도, 나란 존재도 그렇게 시커멓고 냄새나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마치 장이 씻겨나갈 때마다 내 안의 시커먼 죄성도 함께 씻겨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렇게 속을 비우며 함께 마음을 비우니 주님의 임재와 현존 안에 거하려는 마음은 더욱 충만한 갈망으로 다가옵니다. 식욕은 우리의 모든 욕망을 대변합니다. 내 속을 더 채우려는 마음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자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잠시 멈추고 비우니, 또한 먹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다른 욕망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정도로만 충족시키고 절제할 수 있다면, 더 거룩한 욕망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갖게 됩니다.
금식하며 읽기 시작한 신학책은 현대의 대표적인 동방신학자 ‘존 지지울러스’의 〈친교로서의 존재〉란 서적입니다. 목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니 결국 ‘어떤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할까?’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닿으며 “교회론”에 대한 깊은 사상을 품은 이 책에 눈이 가게 된 것이지요. 그리스철학과 교부신학에 대한 전이해가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책이 분명한데, 한 자 한 자에 마음을 쏟아 집중해야지 이해 가능한 내용이었습니다.
신학자 지지울러스는 교회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삼위일체 하나님도 서로가 교제하는 관계 안에서 친교하며 하나가 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상실한 인격이 바로 관계맺음을 통해 존재하는 친교의 인격임을 하나님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려운 이야기는 잠시 뒤로 물리고, 교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께서 관계 안에 서로 사귀며 인격으로 하나가 되듯이, 우리가 교회로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충만한 교제와 성도들 간의 교제,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교제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어떤 제도나 건물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존재하는 방식인 것이지요.
교회를 다니는 것과 교회로 존재하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는 종교적 습관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내가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와 현존 안에서 그분과 살아가며, 그런 우리가 서로를 위해 존재해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잠시 쉬고 머무는 시간, 내 목회가 지나간 세대의 막내가 되어버린 오래된(아니 언제 소멸될 지도 모르는) 제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충만한 교제 가운데 교회가 되어 살아가고 존재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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