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소망의 인내가 넘치는 해!
2018년 교회 표어

설교

Sermon

목회수상
Immanuel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세상을 대하는 세 가지 관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42회 작성일 19-01-01 09:10

본문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목회의 연수가 더해 가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세상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이성적인 관점’입니다. 세상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 거리가 서로간의 차이점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 관점은 매우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한 “대상화가 소외를 낳는다”는 인식론적 명제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어떤 물건과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내가 그로부터 소외되던가, 아니면 상대방이 나로부터 소외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이러한 이성적 관점은 객관적인 만큼 편하고 안정적입니다. 서로간의 거리 때문에 상대방이 갖고 있는 아픔이나 상처와 같은 감정에 내가 휘둘리는 불편함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좀 더 열정적인 관점이 있습니다. 바로 ‘동일화의 관점’입니다. 세익스피어는 “시인과 연인과 광인은 같다”고 했습니다. 시인은 바라보는 세계와 자신을 하나라고 여기며 시적 언어를 쓰고, 연인들은 사랑의 감정에 빠져 서로 하나가 되었다고 여기며, 미친 사람은 세상과 자신의 차이를 깨닫지 못해 방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관점은 매우 열정적이고 직접적입니다. 그래서 동일화의 관점은 때론 약자의 아픔에 참여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폭력적이 될 때도 있습니다. ‘짐이 곧 국가’라는 왕의 동일화는 자신의 욕망에 백성을 희생시키는 폭압적 정치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근래 ‘데이트 폭력’으로 많은 여성이 구타당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이유도 힘을 가진 사람이 연인의 감정과 생각이 자신과 분리되는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북과 좌·우의 이데올로기 대립도 서로의 차이와 역할을 인정치 못할 때 정치적 룰을 잃어버리고 상쟁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죠.


이와 다르게 ‘신앙적인 관점’은 보다 은유적(메타포)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도 대부분 비유(메타포와 유사한)로 이뤄져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메타포’(metaphor)라는 개념은 차이를 전제로 하지만, 그 차이 너머의 동질성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시인들이 ‘그대의 눈은 호수와 같다’라고 할 때, 연인의 눈과 호수는 전적으로 다르지만 ‘그 곳에 빠지고 싶다’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에선 동일한 것이죠.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된 인간은 질적으로 다르지만, 죄인을 구원키 위해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으로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됩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가족들의 비극은 미국에서 이민생활 하는 나와 상관없어 보이지만, 자식을 가진 아버지로서의 동질성이 있고, 때론 생의 아픔과 비극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희생자로서의 동질성을 갖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류를 위해 돌아가신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한 자에게 주어지는 자비와 긍휼의 부르심이 그 차이 너머 연대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요새 살아가고 목회하며 얻는 고민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때론 교인들과 세상의 아픔에 거리를 두는 것이 나의 평안함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다가 상대방과 나의 거리를 뛰어넘어 동일화의 열정으로 다가설 때도 있는데, 곧이어 서로에게 쉽게 실망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신앙의 관점’은 우리에게 고통과 모순의 세상에 직면하는 태도와 방식을 묻고 있습니다.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다가갈까? 그 신비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나와 무관해 보이는 수많은 세상의 아픔 앞에서 ‘스치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한다’는 시인의 마음을 어떻게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인격과 삶의 분열을 넘어 존재(Being)와 행위(Doing)를 통합하신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동시에 하늘의 눈으로 땅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나와 다른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신앙의 눈으로 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처럼 아버지와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 이준협 목사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