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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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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121회 작성일 19-02-0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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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거울의 역사는 매우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BC 3000년경부터 이미 여성들이 화장을 즐겼다고 합니다.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고구려, 신라, 백제 시대 때 사용하던 청동거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고대의 무거운 청동거울로부터 시작된 거울이 중세에 와서는 훨씬 작아지고 휴대성도 편리해지게 됩니다. 르네상스 시대 유리 제작의 중심이었던 베네치아에서 16세기 초 유리판 뒤에 주석박을 붙이는 기술이 발명되면서부터, 유리로 된 거울이 청동제 거울을 대신하게 됩니다. 그래도 이때까지 아직 거울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죠. 그러던 중 17세기 대형 판유리 제작이 본격화되었고, 19세기 도은법(鍍銀法)이 발명된 이후 거울은 일반 가정에까지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교육심리학에서는 가정에 거울을 많이 배치해 놓는 것이 아이들의 심리적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거울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생기고, 이것이 자신을 바라보는 정체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꾸미는 것을 탓하지 말아야겠죠?


우리 자신의 성숙도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시작합니다. 칼빈은 종교개혁 사상을 집대성한 「기독교 강요」 1장에서 인간들이 가져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지식이 두 가지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고, 또 하나는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두 가지 지식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습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받아 누리는 수많은 은사도 그 근원으로 올라가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내면의 은밀한 죄를 바라볼 때도, 결국 우리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인지를 발견하게 되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사랑을 갈망하게 됩니다. 나를 찾으니 하나님을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칼빈의 탁월한 견해였던 것이죠.


둘째 거울은 하나님을 볼 때,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본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살펴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위선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때문에, 나중에 시간이 지나며 결국 그 가면이 자신의 본 모습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교만하고 추악한 존재인지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연결된 근본적 지식이라고 칼빈이 주장한 것입니다.

 

우리는 내면의 거울을 바라보지 않고서 나도,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많은 성도가 외모의 거울은 바라보면서도 분주함과 영적 게으름으로 인해 내면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이 문제를 놓고 생각해 보니, 목사들도 내면의 거울을 바라보지 못할 때, 자신의 한계가 목회의 한계로 드러날 때가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신촌의 모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어떤 교수님은 학교에서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로부터 ‘자뻑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주 엄격한 아버지께 인정받지 못하고 자라다 보니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 자기를 드러내고 알리는 것에 에너지를 쓰고 산 것이죠. 그 성향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청년 시절 제가 교회에서 무척 친하게 지내던 남녀 후배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친구 모두 다 똑같은 상처를 지니고 자라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 가의 아버지가 모두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분이셨던 것이죠. 아버지에게 얻지 못한 사랑을 똑같은 가정에서 자란 남편으로부터 얻고자 했던 것일까요? 하지만 맞으면서 자라온 남편은 갈등이 생길 때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채,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이 아내를 때리는 남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면의 거울을 바라보지 못할 때, 내 상처는 남들에게 상처 주는 또 다른 가시가 되어버립니다. 그것이 분노이던지, 슬픔이던지, 외로움이던지…. 목사도, 성도도 모두 내면의 거울을 통해 날마다 나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렇게 나의 내면을 볼 때만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나’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내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눈을 뜨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한 마디로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저에겐 새벽기도 시간이 내면의 거울을 보는 시간입니다. 글을 쓰는 시간이, 그 글로 쓰이는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됩니다. 설교를 준비하고 선포하는 시간을 통해, 그 엄위한 말씀 앞에 스스로 설 자격이 있는지를 묻게 됩니다. 결국, 나는 주님의 은혜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나의 정체이고, 실체이고, 진실입니다. 오늘 밤에도 내면의 거울을 바라보며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며 하루를 정리해 봅니다.


- 이준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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