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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124회 작성일 19-03-18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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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4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됩니다. 한 해 전 이스라엘의 첩보기관 모사드의 작전으로 연행된, 유대인 대량학살 사건의 실무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 전 세계에 중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원래 유대인의 강제 이주 전문가였던 그는, 전쟁의 발발과 함께 ‘최종 해결책’이라 불리는 유대인 말살 정책의 실무 책임자로 임명되어 활동합니다. 법정에서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일부 인정했지만, “국가의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답변합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는 것이죠. 세계에서 온 법학자들로 구성된 재판부는 오랜 기간의 재판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아이히만에게 교수형 판결을 내렸고, 이후 항소가 기각된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당시의 사상가였던 ‘한나 아렌트’는 <뉴요커>라는 잡지의 요청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그 재판을 참관하고 보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평범함에 놀라게 됩니다. 그가 머리에 뿔이 난 괴물이 아니라 이웃에서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아저씨의 인상을 갖고 있었던 것이죠. 아이히만의 재판을 분석하면서 아렌트는 △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 그 결과를 상상하지 않았으며 △ 모두가 유죄라고 부르는 유대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사고 없음’이 아이히만의 죄라고 주장합니다. 

학자이면서도 저널리스트서의 면모를 보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저서를 통해 아렌트는 악은 의외로 평범한 곳에서 시작된다는 사상을 발전시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가운데 선과 악의 기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에 대한 성숙한 사고가 없으면, 의외로 평범한 상황과 사람을 통해서도 잔인한 악이 구체화될 수 있다는 것이죠. 쉽게 말 해 모든 것을 당연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생각 없음’이 사회의 악을 강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철학적으로 분석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옷을 입을까? 오늘은 누구를 만날까? 어떤 사람과 결혼할까? 어떤 대학에 들어갈까?’ 등의 크고 작은 일을 끊임없이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선택한다고 여기며 그 선택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게 되죠. 그러나 아렌트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지녔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 ‘마르쿠제’는 그의 저서 『1차원적 인간』을 통해 '이러한 선택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나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왜냐하면 산업사회의 성격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그것을 구매하도록 광고하며 강요하기에, 소비자들이 무비판적으로 그것을 소비하는 경향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 역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스스로 매우 자유롭다고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성원 모두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전혀 모순을 느끼지 못한 채 현재의 상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마르쿠제는 ‘1차원적 인간’이라고 묘사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생각’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이성’을 의심을 일으키는 원인이라 여겨 ‘믿음’에 반대되는 말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정의’(知情意)의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목사님 설교를 듣다가 무릎을 치며 ‘아멘’이라고 받아들일 때, 이것은 내가 비로소 그 말씀을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절박하게 살아가다가 말씀을 통해 나의 상황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감사를 표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해(知)되어야지 감동(情)을 받고, 감동을 받아야지 손발로 움직이는 의지(意)를 품게 되는 것이죠.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도 감리교 교리의 4대 요소를 ‘성서, 이성, 전통, 경험’이라고 하며, 그 시대에서 진리를 이해하기 위한 이성의 역할을 매우 중요시 여겼습니다. 

우리는 항상 가슴 촉촉하게 나를 터치하는 회복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변화를 위해 우리를 부르시는 성서적 ‘제자도’에 대해서는 매우 큰 부담을 느낍니다. 은혜 받는 자리를 사모합니다. 하지만, 은혜를 나누며 사는 헌신에 대해서는 부담감을 갖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야성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믿음이 머리에 추상적으로 머물 뿐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깊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얻은 ‘생각’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해석된 진리를 나의 것으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1차원적 신앙’이 아니라, 선포된 말씀을 붙잡고 야곱처럼 씨름하며 얻은 깨달음, 즉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의 힘’을 지닌 신앙인으로 성장할 때,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제자 만드는 교회’라는 연합감리교회의 비전을 우리 안에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준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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