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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감수성을 키우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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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50회 작성일 19-06-30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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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9월, 차디찬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해안가로 떠밀려온 세살배기 시리아 꼬마 난민의 사진 한 장이 지구촌을 울렸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아일란 쿠르디’. 쿠르디와 그 가족은 내전 중인 시리아를 탈출해 육로를 통해 터키로 온 뒤, 에게 해를 통해 그리스로 탈출하던 중 보트가 거센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난파해 쿠르디를 포함해 3명의 가족들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터키의 휴양지 보드룸의 한 해변 모래밭에 얼굴을 묻고 숨진 채 발견된 세살배기 어린 아이의 모습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며 유럽 전체의 난민 정책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2017년 1월, 생후 16개월 된 남자 아이가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국경지대에 있는 한 강가의 진흙탕에 얼굴을 묻고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미얀마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인 아이의 이름은 ‘무하마드 소하예트’였습니다. 로힝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얀마 정부군의 무차별적인 살육의 대상이었던 아이는 세살배기 형, 엄마와 함께 아빠가 마련해 준 보트를 타고 방글라데시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군 헬기의 공격을 받고 보트가 전복되는 바람에 세모자는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소하예트의 시신은 강변의 진흙에 얼굴을 묻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죽은 소하예트의 사진은 로힝야족을 잔인하게 탄압하는 마얀바 정부의 야만성을 국제사회에 적나라하게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인 지난 6월 26일, 멕시코 국경 리오그란데 강변에서 아빠의 목에 팔을 두르고 엎드린 채 발견된 두 살배기 여자 아이의 시신 사진이 현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전 세계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검은 티셔츠 속에서 아빠의 목을 꼭 끌어안은 채 죽어있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발레리아’, 아이의 아빠 마르티네스는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해 보다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지난 4월 미국행을 결심하고 엘살바도르에서 1,500㎞가 넘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멕시코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발레리아 가족은 미국 망명 신청에 실패하자 물살이 빠른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미국에 입국하려다 변을 당한 것입니다. 당일 아빠는 딸 발레리아를 안고 강을 건넌 후 딸을 강둑에 앉혀놓고 다시 건너편에 있는 아내를 데리러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멀어지는 아빠를 본 딸이 다시 강으로 뛰어들었던 것이죠. 아빠는 얼른 돌아와 가까스로 딸을 붙들고 자신의 티셔츠 안에 넣어 단단히 고정했지만, 급물살에 함께 휩쓸려가고 말았다. 아내 바네사 아벨로스는 맞은편에서 남편과 딸의 모습을 눈물과 비명 속에 지켜봐야 했습니다. 미국 NBC는 그녀와의 인터뷰를 통해 “둘 다 서로를 보내지 않았어, 서로를 껴안고 죽은 거야”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발레리아 부녀의 슬픈 죽음은 트럼프 정부의 비인간적인 이민정책을 고발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또 어떤 이는 “민주당이 새로운 이민법에 동의하지 않아 탈법적 이민행렬을 막지 못 해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당을 지지하건, 공화당을 지지하건 간에 정치적 견해를 떠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자비의 감수성’입니다. 


아픈 사건을 보며 함께 아파하는 자비의 감수성은 나와 더욱 가까운 인격적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곤 합니다. 관계의 그물에 가까이 있을수록 공감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굳이 함께 슬퍼하는 감정의 소비를 줄이고 위해 눈을 닫고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의 관계의 그물은 전 세계에 뻗어 있습니다. 페이스 북을 예로 들어도 몇 사람만 관계의 그물을 건너가면 전 세계의 사람들이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는 나와 다른 인종과 종교, 정치적 성향과 철학이 다른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의 마음이어서 그런지 발레리아의 기사와 사진이 며칠 동안 제 마음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과 나의 공통점은 딸을 키우는 아빠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합법과 불법의 차이가 있지만 고향을 떠나 미국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정착하려는 이민자의 꿈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동질성이 발레리아의 사망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자비의 영성은 이 세상의 관계의 흐름 속에 숨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선교의 지경을 넓혀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듯, 관계의 그물 안에서 적극적으로 관계 맺어 가는 것을 뜻합니다. 여전히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내 얼굴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비의 감수성에 눈을 뜰 때 우리의 진정한 중보와 연대가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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