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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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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50회 작성일 19-09-15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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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청년 목회를 하며 만나게 된 청년들 중 부모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유심히 바라보고 생각하게 된 경우에는 엄마와의 불균형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딸들이었습니다. 보통 남편과의 문제가 있는 엄마의 경우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며 딸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해 대리 만족을 얻고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딸의 대학입학, 전공 선택, 남자친구 고르기, 취업의 문제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간섭하며 영향을 끼치고 딸을 대신해 엄마들이 딸의 인생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딸들은 어머니의 절대적 간섭에 분노하면서도 차차 그런 선택을 받아들이며 의존적인 모습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어머니가 선택해 주지 못하면 스스로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게 되지요.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어머니가 모든 옷을 골라주고 심지어 머리까지 감겨 주는 경우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남자친구를 만나거나 결혼할 경우에도 인격적인 관계보다 아빠나 엄마의 역할을 대신 해 줄 역할 대상자를 찾는 것이 앞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관계도 역시 종속-의존의 관계가 지배적인 모습이 되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지리적 문화적 이유로 자녀를 일찍 독립시켜야 하는 미국의 경우가 자녀를 끼고 살아야 하는 한국보다 건강하게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콤플렉스가 콤플렉스를 알아보고 만나는 경우입니다. 부모 중에 알코올 중독자가 있을 경우 자녀가 알코올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생각보다 높습니다. 딸의 경우 아빠가 알코올 중독자일 경우 아빠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알코올 중독자인 배우자로부터 얻기 위해, 알코올 중독자인 남자 친구를 자연스럽게 만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역시 같은 경우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된 아들이 감정을 자연스럽게 배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 해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나서도 아내를 폭행하는 남편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합니다. 아버지로부터 폭행 당하며 자라온 딸이 그 사랑의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와 같은 부류의 남자친구를 만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에 눈이 먼 단계에 폭력성이 드러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그런 남자를 무의식중에 알아보는지 모르겠지만, 폭력에 노출된 여자가 폭력적인 남자를 만나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그 남자에게서 보상 받으려는 심리는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인 것입니다.


인류학자인 리처드 랭햄과 영장류 동물학자인 데일 피터슨이 쓴 『악마 같은 남성』 이란 책은 남성의 폭력성을 고찰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남성은 사회적으로 힘에 대한 욕망을 가지도록, 그러면서 점점 폭력적이 되도록 진화해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공격적인 연합을 만들어 자신들을 보호하고 집단을 수호하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힘을 갖는 것이 자신들의 생존과 후손 번식에 더 많은 자유와 이익을 얻는데 유익한 전략이기 때문이란 것이죠. 반대로 남성에 비해 물리적 계급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은 그런 남성들과 공존하기 위해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질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남성들의 폭력성을 두려워하면서도 폭력적인 남성에게 의존하는 생존법을 지속시켜 왔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성은 남성의 폭력성을 두려워하면서도 가장 힘이 세고 폭력적인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가장 폭력적인 남성이 가장 훌륭한 보호자가 되며, 그래야 훌륭한 자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남성이 이렇게 폭력성을 강화하도록 진화해 온 과정의 일정 부분에 여성들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심리적인 ‘홀로 서기’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스스로 홀로 서지 못할 때 우리의 정서는 종속-의존의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법을 인생에서 배우지 못하면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내 안의 어린 아이를 품고 사는 ‘성인 아이’가 되어 사실에 대한 미숙한 판단과 관계 안의 철없는 표현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이를 얼마만큼 먹었는지, 공부를 얼마만큼 했는지 상관없이 홀로 설 수 없는 성인들에겐 각자가 자기 안에 숨기고 있는 ‘어린 아이’가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그 어린 아이는 성인이 되고도 남은 어른들이 보이는 판단 미숙과 정서적 결핍감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홀로 서기’가 신앙의 영역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은 홀로 설 수 있어 하나님을 필요치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성인일수록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절대적인 신의 주권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어떤 아픈 경험으로 자라지 않고 있는 내 안의 어린 아이를 인정하고 감싸 안을 수 있는 능력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받아들여진 경험 가운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내가 아프다는 것도, 자라지 않고 있다는 것도, 부족하고 죄스러운 부분도 그 분의 사랑 안에서 인정하고 좀 더 바르게 바라보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내 인생의 치유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민 목회가 지속될수록 ‘내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 때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갖고 있던 나의 넓은 인맥도, 어린 나이에 목사가 되어 버려 지도자의 자리에만 서 있던 나의 경험도, 깊고 넓은 공부를 가능케 했던 나의 학력도, 이제 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나를 도울 수 없는 고립 무원의 상태에 서 있음을 깨달을 때, 그 때가 절망적인 때가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기’를 할 때임을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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